'이 사람이 누구인가?' 독립운동가 초상에 눈동자 없는 이유
[독립운동가 그림쟁이의 기록실] 시리즈 Historying - Face me의 시작
2012년 일본에서의 전문학교 마지막 학년 때부터 조금씩 유화를 그리고 있었다. 이미 마음속에는 한국에서 전공했던 디자인보다 그림을 하겠다는 다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 사람 얼굴을 그리기 좋아해 같은 반 친구들을 유화로 그려주곤 했다. 졸업 후에는 인터넷에서 찾은 인물 사진들을 보며 초상화 연습에 몰두했다.
한국에서는 시각디자인을, 일본에서는 그래픽아트를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유화나 아크릴 같은 재료는 여전히 서툴렀다. 무엇보다 형편상 재료를 마음껏 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낙서로 덮인 종이 위에 다시 그리거나, 망친 캔버스 위에 덧칠하며 몸으로 익혀 나갔다. 그렇게 혼자서 천천히 배우는 시간이 이어졌다.
2013년, 우연히 독립운동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날 이후 마음속에 '독립운동가들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게 남았다. 하지만 그 결심이 바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작품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해 가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제 소포 비용이 너무 비싸 짐을 세 갈래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꼭 필요한 것은 직접 들고 왔고, 며칠 늦어져도 괜찮은 것들은 항공 소포로, 급하지 않은 짐은 배편으로 부쳤다. 물감과 붓은 소포에 넣었고, 큰 캔버스들은 분해해서 배로 보냈다. 비용을 아끼느라 그동안 쌓였던 연습작들은 모두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의 습작은 남아있지 않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
▲김구의 스케치유일하게 남은 독립운동가의 스케치. 일본에서 그린 것이 아닌 한국에서 스케치로 남긴 것이다. ⓒ 주환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붓을 들었다. 일본에서 잠깐 손대기만 했던 독립운동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시도를 하려니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감정도 표현도 서툴러 붓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흰 캔버스 앞에 앉으면 겁이 났다. 머릿속에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마음속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럴수록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감정 표현은 최대한 단순하게 두되, 역사적 맥락과 인물의 삶은 더 깊이 이해하려 애썼다. 자료를 뒤지다 본 다큐멘터리 중에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 장면을 촬영한 필름이 실제로 존재하지만, 일본이 그 부분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서사는 내 안에서 더 많은 질문을 남겼고, 결국 첫 작업이 '안중근'이었다.
▲Historying_faceme_도마 안중근역사의 기록을 미학적으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일부를 의도적으로 변형함으로써, 그에 오는 결핍을 표현하였다. 이는 선조들 삶의 한 부분들을 역사적 증거를 토대로 화폭에 옮기는 동시에 현대인들에게 역사의 또 다른 단면과 역사가 단지 기록이 아닌 살아있는 유기임을 보여주는 작업이며 작가의 감정과 생각이 이입된, 감정의 미학적 간섭이기도 하다. -Historying 작가노트 ⓒ 주환선
내가 그린 독립운동가들의 초상에는 눈동자가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들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볼수록, 얼굴을 바라볼수록 복잡한 감정이 쌓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크게 남는 것은 죄송스러움이었다.
둘째, 관람자의 마음에 더 깊고 날카로운 인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눈은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이자, 동시에 한 인물을 규정하는 요소다. 그래서 눈을 지움으로써 '이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낯섦과 부끄러움을 감상자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독립운동가들을 마주하는 태도
▲2024년 광주 개인전 <동닙展> 독립운동가 Face me 시리즈 개인전 사진. 안중근의사 홍보대사 최종율씨의 사진이다. ⓒ 주환선
이렇게 시작된 것이 '나를 마주하다' 시리즈다. 터치가 마르고, 다시 덧칠되며, 색이 쌓이고 가려지고, 또다시 드러난다. 나는 붓보다는 나이프를 쓴다. 화면 위에 질감을 쌓아 올리며 인물의 얼굴과 시간을 함께 새긴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이 서른 점 남짓이다. 숫자로만 보면 작가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적은 양일지 모른다.
독립운동가가 작업의 중심이지만, 그 사이사이 초상화 의뢰 작업도 했고, 다른 시리즈들도 틈틈이 그렸다.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일러스트 작업은 또 별도로 이어갔다. 육아와 작업을 함께 하면서 작업 속도는 더 느려졌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몇몇 작품은 후손들과 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나 말고 이 그림을 진심으로 아껴줄 사람은 누구일까'라고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이들이 그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디지털 작업 위주로 이어가고 있다. 재료와 환경은 바뀌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을 마주하는 태도는 그대로다. 여전히 공부하고, 자료를 모으고, 전공자와 학자들에게 질문을 보내며 조금씩 확인해 나간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그리고 있고, 내 기록과 그림들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있다.





영어사용자 분들을 위해, 작가님 글을 영어로 번역해서 그대로 올려놨습니다. 작가님 이력과 후원방법 안내도 함께 실었습니다. 의미있는 작업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계심에 멀리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도전이 또다른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