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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hwan (Jerry) Choi, PhD's avatar

저는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Uncle Vanya)」 연극과 작품을 통해, 질적 사례연구(qualitative case study) 방법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희곡 한 편을 사례로 놓고 인물의 말과 침묵, 관계와 상황을 반복해 분석하고 새로운 통찰을 끌어내는 훈련이었는데, 그때 슬라브 민족 특유의 염세적 인생관과 그 안에 담긴 깊은 철학적 통찰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바냐 아저씨가 자신의 삶이 헛되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 깨달음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한국인으로서 건축학도였던 천재 시인 이상의 이름은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일은 늘 어렵기만 했습니다.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읽으며 원래 전공하던 기계공학 분야의 카오스 이론이 말하는 복잡계를 떠올려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작품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이해되지 않는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이상이 우리에게 남긴 경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상과 체호프를 나란히 놓고 두 사람의 대비되는 점과 공통점을 짚어낸 이 글이 더욱 독특하게 읽힙니다. 두 작가가 처했던 염세적 인생관과 암울한 현실 속 지식인의 갈등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응이 한쪽은 '자아의 분열'로, 다른 한쪽은 '행동의 마비'로 나타난다는 통찰은 매우 예리합니다. 체호프의 인물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면서 움직이지 못하고, 이상의 인물은 움직일 자아 자체를 잃어갑니다. 같은 시대의 압력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구분은 문학을 넘어섭니다. 조직에서도, 돌봄의 현장에서도 우리는 주변상황에 무기력한 사람을 종종 만납니다. 그가 알면서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판단할 자기 자신이 이미 흩어진 것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우리의 도움은 번번이 빗나갑니다.

인류에게 가장 어려운 작품을 남긴 두 천재를 대비시켜 그들이 던지는 질문을 끌어낸 이 글은 인간에 대한 한 단계 높은 이해를 촉구합니다. 매우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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